본문 바로가기

관혼상제(冠婚喪祭)/제(祭)

송도성당 : 이태석 신부의 요람이었던 성당

반응형

 이태석 신부는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김수환 추기경에게 사제 서품을 받고 남수단으로 떠났다. 남수단에서 그는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서 백신을 맞추고, 신발을 가져다주었다. 슈바이처 박사처럼 봉사를 하면서 20년 넘게 내전 중이던 남수단에 예수님의 사랑을 뿌렸다. 그렇게 봉사를 하던 중, 휴가 차 귀국한 한국에서 건강검진 결과 대장암 4기 판정을 받는다. 그렇게 1년 남짓 투병을 하다가 하느님의 곁으로 떠났다.
 이렇게 예수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던 이태석 신부가 유아세례를 받고,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 송도성당이다.

 실제로 가보면 송도성당 바로 옆에 이태석 신부의 생가가 위치해 있다.
 외갓집의 영향으로 가톨릭신부들에 대해서 많이 듣고 만났지만, 성당에 많이 다니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송도까지 와서 송도성당을 방문하지 않으면 아쉬울 것 같았다. 한 발자국 들어가서 에너지를 느끼고 싶었다.

입구

 여느 성당과 달라 보이는 것은 맑은 하늘이 비치고 있기 때문에 느껴지는 착각일까? 아니면, 진짜 이태석 신부와 같은 사람을 배출한 곳이라서 남다른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일까? 알 수 없지만, 안으로 조금 더 발걸음을 옮겨 보았다.

외부

 외부에는 안내판과 조그마한 사무실이 있었는데, 사무실의 용도는 정확히 모르겠다.

1층

 들어간 1층에는 예수상과 성모상이 반겨주었으며, 친교의 경당이 있었다. 아무래도 신도들이 차와 담소를 나누는 장소이지 않나 싶다.

2층 가는 길

 2층 성전으로 가는 길에는 한국 가톨릭의 시작을 표현한 그림과 본당에 모신 성인들의 유해에 대한 설명이 쓰여 있었다. 확실히 오래전에 새워진 곳인 것 같다.

2층

 2층은 성당 특유의 스테인드 글라스 모자이크가 자리 잡고 있었다. 거의 성당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인테리어인데, 세월이 지나고 이것만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히 조선시대의 선비들이 스스로 가톨릭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한 모자이크는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다.

3층 가는 길

 3층으로 올라가니, 옥상으로 연결이 되었지만, 나가는 길이 막혀 있었다. 할 수 없이, 밖으로 나가서 옆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송도성당 십자가의 길

 송도성당의 옆길은 십자가의 길이라고 불린다. 성모 마리아부터 시작하는 이 길은 예수님의 일생과 각종 기적들이 새겨져 있었다. 아멘!

송도성당에서 바라본 하늘

 십자가의 길 끝에서 마주 한 하늘이다. 닥지닥지 달라붙은 열립주택들 위로 초록빛 산과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참 운치 있다. 사람들이 이래서 부산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반응형